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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레이더

거리두기 잘하는 고양이

by 오늘의우리 2022. 4. 11.

너와 나의 거리.

데려가 키울 수 없다면 밥을 챙겨주더라도 반드시 유지해야하는게 고양이와의 적당한 거리인것 같다. 자주보며 인사하고 정성들여 밥을 챙겨주다보면 어느날엔 한 번쯤은 만져보고싶고, 또 어느날엔 한 번 안아주고 싶고, 애정을 주고싶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엔 그게 길에서 혼자 살아가야 할 고양이에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결과밖에 안된다는걸 알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하는게 맞다.

사람은 고양이에게 먼저 손내밀 수 없지만, 고양이는 먼저 손내밀 수 있다. 온갖 애교를 부리며 가는 길을 붙잡던 날의 턱시도냥이다. 매일 찾아오던 고양이가 어떠한 이유로 더 이상 얼굴을 비추지 않아더라도 내가 어찌 해 줄 수 없는것도 그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든 고양이를 돌봐줄 수도 없고, 모든 고양이를 책임질 수도 없다면 더욱 더 잘 지켜야하는게 길아이들과의 거리이다. 그러다보면 밥을 챙겨주는것조차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적어도 밥이라도..' 라는 마음을 품고 매일 깨끗한 물고, 밥을 챙겨주며 마음을 나눈다.

어느 날의 이야기다.
턱시도냥이는 나를 찾아와선 밥을 먹지 않고, 가만히 나를 보고 있을때가 종종있는데, 거리를 좁히고 싶은 마음인가 싶어 가끔 코인사를 시도하는데, 얄짤없이 거절당했던 날. 유튜브에서 어떤 소리를 틀어주면 고양이가 듣고 달려온다는 걸 보고선 고양이를 더 보고싶은 마음에 멀리 가는 뒷통수에다가 대고 음성을 틀었다.

너무 놀랍게도, 가던 길을 돌아보던 턱시도는 날 보더니 마구 뛰어왔고, 음성을 틀고 있었기 때문에 영상을 찍지 못했던게 너무 아쉬울만큼 한 걸음에 달려왔다. 뭐야.. 너..?
음성을 들어보니 고양이가 싸우는 소리같았는데, 그 소리를 들고 이 턱시도가 나를 지키려고 뛰어온것 아니겠는가(망상
그저 그 소리에 반응해서 뛰어온게 너무 신기했는데, 이 멋진 고영의 눈빛과 행동이 심상치가 않았다.

턱시도는 그 후 내 근처에서 자리를...뜨지 못했다.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한 번 보더니, 내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장난스럽게 틀었던 음성을 듣고 달려와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빤히 보는 시선을 느끼고나니(앗, 혹시 빡친건가...?) 너무 미안해져서 나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갈 길 가라고 몇번이나 말을 건넸다(알아듣겠냐?

미..미안.
근데 너 좀 믿음직스럽고 멋지다?

쪼매난게 온 바닥을 뒹군다. 어느날엔 다 큰것 같아 보이다가 어느날엔 또 이렇게 작아보인다.
코옆에 콕 찍힌 점이 너무 매력적인 사랑스러운 고양이.

응 내꺼. ㅋㅋㅋㅋㅋ
심취해서 내내 킁킁 냄새를 맡아대길래 뭐하냐? 했더니 갑자기 의식한듯 멈추고는 앉는거 무슨일이야 귀염둥이야.

코 옆 점이 이날은 하트로 보인다. 너를 향한 내 마음 같은걸까><

당신, 제법 쿨하세요

가끔은 그냥 얼굴만 스윽 비추고 가는데, 뒷 모습 참 매력적이란 말이야.
여기 한 번만 돌아보고가!!라고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듣는 고양이, 너무 사랑해

지난 계절의 모습.
털쪘어, 너.

털이 보송보송 올라온 모습을 보니, 이 반달곰같은 녀석이 온 얼굴에 상처를 안고 왔을 때가 생각난다. 영역동물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상처.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상처가 잘 아물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던 날도 흐르고 흘러, 이렇게 윤기 흐르는 코트를 걸치고, 볼살 빠방하게 올라서 상처하나 없는 얼굴로 만나러 왔을때의 반가움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너와 몇번의 계절을 함께 지나고 또 더 많은 새로운 계절을 함께 맞이하길 바라. 세상 모든 고양이가 걱정없이 사랑만 받으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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